숙소 곳곳에서 피크가 발견되기 전에도 정윤호는 뚱했다. 누구따라 기타사러 가기로 약속한 날에는 하루종일 말꼬리를 붙잡고 이거하자 저거하자 오늘 아니면 안된다. 촬영때문에 필요하다고 누차 말해도, 몇장면 있지도 않잖아 그냥 치는척 하면 안되나? 애같은 소리. 기어코 기타를 사 들고 온 날에는 방으로 휙 들어가 버리기도 했다. 물론 현관에 들어서 볼에 뽀뽀를 ...
눈을 떴더니 보이는 건 달이었다. 주변을 둘러볼틈도 없이, 이상하게 등이 좀 따끔거린다 싶기는 했으나, 어찌되었건 눈에 쏙 들어온 달에 시선을 빼앗겨, 그대로, 아마도 내 직감이 맞다면 누워있는 채로 달을 보았다.그 달이 꿈처럼 참 이상한 것이, 그냥 허여멀건한 달이 아니라서 눈을 꿈뻑거리며 연신 쳐다보니 점점 크게 보이기까지 했다."이게 웬...."중얼거...
그래서 잡아 먹으려고 작정을 했단 뜻이야?아니 잘 들어봐맞잖아. 처음부터 쫓아간게.근데 늑대 생각도 좀 해봐. 맛있게 생긴데다 좋아하는 빨간색 모자까지 뒤집어 썼으니, 식욕이 안돌고 배겨?빨간 모자, 아니 공대의 빨간 후드로 유명한 심조교는 그날도 어김없이 최교수의 심부름을 하고 있었대. 최교수 알지? 거동이 영 불편하셔서 공대 제2건물이 남문 쪽에 생길 ...
가을, 가을, 가을봄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가을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센치한 기분, 적당한 바람, 쌓이는 낙엽. 격하게 공감하는 바였다. 봄, 봄, 봄 하고 부르짖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는데, 요즘 가을은 너무하게도 쓱 나타났다가 금세 가고 없다.예전엔 이상하게 나뭇잎이 바싹 말라 떨어지는 풍경이 그리웠다. 그래서 홀로 미리, 봄부터...
쪽지를 받았다.[나랑 사귀자]산타그림에 루돌프가 뛰어다니는 포스트잇에 엄청난 악필로 그렇게 쓰여 있었다. 누구의 짓인 줄 뻔히 알았지만 괜히 그 순간엔 침 한 번을 꿀꺽 삼키고 뒤를 돌아보았다.뒷쪽 테이블에서 보지도 않는 전공책 뒤에 얼굴을 숨기고 키득거리고 있는 정윤호가, 한 눈에 들어왔다.[주ㄱ을래]열받아서 문자를 쳐서 보내자 숨겨지지도 않는 책 뒤에서...
형은 고등학교를 마칠 때 까진 나를 돌보겠다고 말했다. 나는 이같은 조건부의, 이미 성가신 책임을 도맡았다는 것을 내포한, 그런 불우한 제안이 끔찍했음에도 거절할 수 없었다.졸업"담배, 끊으면 안돼?"경솔한 질문이었다. 알고도 했다. 한 번도 정윤호는 내 부탁을 들어준 적도 내 말에 귀기울인 적도 없었다. 앓다 참다 말한 저 얘기를 정윤호는 아마 되바라진 ...
빵빵!!클락션 소리에 잠에서 깼다. 차 사고부터는 꼭 저짓을 한다. 열받아서 지난번엔 니가 나 이집에서 쫓겨나면 책임질거냐고 개지랄을 했는데 협박같지도 않은지,"쫓겨난다고..?"혼자 중얼거리더니 아예 작정하고 더 울려댔다.빵!!저 빵소리에 반응을 안해주면 몇번이고 저래서 부재중 전화 엄청 쌓인 핸드폰으로 문잘 쳤다.일어났어그만 빵빵거려빛보다 빠른 속도로 숫...
나는 기분이 좋았다.네 기분은 어땠는지 모른다.나는 원래부터 그랬다. 네 기분이 뭐가 됐던, 내가 제일 중요하니까.너는 조금 우울한 표정을 지었던 것도 같았다."너무 좋은 기회야."나는 같잖은 설득을 했다.너는 내 같잖은 설득에 말을 아꼈다."안 갈 순 없어.""...알아."너는 생각하는 듯 했다. 아주 깊이."돌아오는 거야?"너는 아주 낮은 자세로 나를 ...
교복깃을 매만졌다. 어느새 쑥 큰 창민은 윤호와 눈높이를 마주할 정도가 되었다. 윤호는 이제 오늘 지나면 벗어버릴 옷을 저리 소중히 쓰다듬는 창민이 안쓰러웠다."입고 싶어 그래?"속도 모르고 뱉은 이야기엔 고개를 절레절레."멋있어 그런다 형아."씨모르는 자식에게 한 푼도 쓸 수 없다던 아버지는 기어코 창민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어릴적부터 집안의 모든 ...
만화같은 일이었다. 길을 가다가 쪼그려 앉아있는 정윤호를 만난 것은.정윤호는 그야말로 그 큰 몸을 구부려 쪼그려 앉아 있었다.나는 우리 집에 가려면 거길 지나가야만 했고, 그 길은 참 웬만큼 좁았다.평소 모르는 사람에게 말거는 걸 그닥 반가워하지 않는 나는 가만히 선 채로 조금 기다렸다.쪼그려 앉은 정윤호는 내가 선 지 3초쯤 흘렀을 때 천천히 나를 올려다...
(개정판) 나혼자 산다가자싫어가자아..아 싫어심창민은 결국 집을 트고야 말았다. 다행히도 정윤호 집을. 서로 사귀기 시작하면서 동거에서 독립했다. 그건 서로 합의한 사항이었다. 마음을 확인하고 나서 벅차기도 했지만, 되려 같이 살면서 서로 신경줄이 예민해 지는 건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그리고 어차피 활동으로 붙어 있기도 했고, 눈만 마주치면 불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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